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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hwi12 : 2007-10-28 ī : 7

남도 기행 -그날의 풍경들 ۼ : 2007-11-08
용선식(18) hit : 1216

단풍놀이 계절이다. 늦가을 정취를 만끽하기엔 단풍구경 만한 게 없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길에 나서니 차들이 씽씽 잘도 달린다. 그래, 부지런한 사람은 남보다 좋은 걸 누릴 수 있음이 확실해.
양재역에 도착하니 여행자를 기다리는 관광버스들로 북적거려 내가 탈 차를 찾기 어려웠다.
전 국민의 통신 기구 휴대폰을 꺼내 우리일행의 리더를 찾는다.
집도 먼 사람이 벌써 와서 차를 마시고 있단다.
일행에게 나누어줄 과일을 차에 싣고 친구들이 오기를 기다린다.
차는 제 시간에 서울을 출발, 10시 반경에 전북 부안에 있는 신석정 생가를 향했다. 평생 고향을 떠나지 않고 살다간 시인 신석정- 동네 어귀엔 감나무들이 이미 잎을 거의 다 떨구고  그 알몸을 발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학생시절 즐겨 암송하던 신석정님의 시가 떠오른다

‘하이얀 감꽃 뀌미뀌미 뀌미던 것은/ 오월이란 시절이 남기고 간 빛나는 이야기어니/ 물밀듯 다가오는 따뜻한 이 가을에/ 붉은 감빛 유달리 짙어만 지네/ 오늘은 저 감을 또옥똑 따며 푸른 하늘 밑에서 살고 싶어라/ 감은 푸른 하늘 밑에 사는 붉은 열매이어니’

비교적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모양인지 마루엔 먼지가 뽀얗다.
방문을 열고 적적히 영정 속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선생님을 일별하고 조용히 물러나왔다.

일행은 잠시 버스를 타고 성황산 기슭의 매창 공원으로 이동했다. 북한에 송도삼절이 있듯이 ‘부안의 삼절’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조선의 기생 매창이란다. 

‘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秋風落葉에 저도 날 생각는가/ 千里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노라’

이름 하나 얻지 못하고 평생을 살다간 여인이 태반인데 번듯하게 묘를 쓰고 누워있는 여인을 바라보니 시와 거문고를 통해 그녀가 불사른 예술혼의 위대함을 실감하겠다. 우리가 잘 아는 허균도 한때 그녀와 가까웠으나 일정한 거리를 두고 交遊함으로써 오래도록 우정을 쌓은 본보기를 보여준다. 

점심은 미리 예약해 놓은 부안전통한식전문점을 찾아들었다.
오래된 듯 보이는 한옥의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넓은 마당엔 凋落의 계절 끝자락에 국화, 맨드라미, 과꽃이 작별의 미소를 보내오고 사라져가는 전통생활용구들이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음식이 일행의 입맛을 어느 정도 만족시켜준 듯해서 주관하는 입장에서 마음이 가볍다.

식후엔 전나무숲길이 유명한 내소사를 찾았다.
대웅보전의 연꽃무늬 창살을 대하니 이곳도 이미 한두 번 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세월이 흐르면서 기억마저 씻겨 버리는지 올 때마다 새롭다. 그 사실에 생각이 미치니 절로 웃음이 난다. 가을풍광이 빼어난 곳을 보려면 뭐니뭐니해도 절을 찾아야겠다.  은은하게 단풍든 산과 단청이 퇴색해서 더욱 고즈넉해 보이는 절간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 없다.

내소사를 뒤로하고 오늘의 하이라이트-국화축제를 보러 다시 고속도로를 탔다.
길마재를 가까이 두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잠시 미당의 생가를 들르기로 했다. 마침 미당문학관에서는 문학제가 열리고 있었다. 을씨년스런 바람이 몰려드는 넓은 마당에 듬성듬성 앉아있는 관객 앞에서 세월의 풍상을 인 여인이  미당의 시 암송을 하고 있었다. 아주 절절하게-- 문학관에 들어가 서정주시인의 자취를 더듬어보고 돌아나오면서, 전에 왔을 때도 그랬듯이, 직사각형의 상자를 세워놓은 듯한 문학관 건물이 바닷가 시골마을과 참 안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발길을 돌려 30만평의 땅에 300억 송이의 국화를 심어놓았다는 국화축제 마당에 이르렀다.
날씨가 고르지 않아서인지 국화는 아직 그 아름다운 모습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고 그나마 꽃이 보기 좋은 아랫녘은 사진을 찍느라 들락거려서 꽃송이들이 어지러이 밟힌 채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이리저리 사진이 잘 나올만한 장소를 찾느라 이제 막 피어난 꽃들이 발밑에서 비명을 지르는 소리도 몰라라 허둥대는 나의 모습도 거기 있었다.
하룻밤 정도 숙박을 하고 둘러보아야 할 코스를 하루 만에 돌다보니 분명히 볼 건 다 본 것 같은데 마음에 차분히 담겨오는 것은 없었다. 
훗날 다시 조용히 찾아오리라 맘먹으며 귀경길을 재촉했다.

2007년 11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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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25) 2007-11-13
전라도 지방 여행을 잘 하고 오셨네요. 300억 송이 국화를 심었다는 글속에 놀라는 제 마음도 거기 있었습니다. 국화 향기같은 가을 내음이 물씬 풍기는 아름다우신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