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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성 ܺīּ :
주문을 외워보자~ 살고 싶다 콩나물!
 : j7679 : 2005-03-21 ī : 5

선암사-녹동항-소록도-송광사...결자해지 ۼ : 2005-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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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 : [ 선암사-새벽풍경.jpg - 125 KByte ]




혼자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날까지 어떻게든 일을 끝내려고 무진 애를 썼지요. 그러나 사람의 일이란 게 마음 같지 않잖습니까?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니까요. 

부득불 선발대를 먼저 떠나보내고 오전에 종로구 석탄회관으로 가서 두 시간 일한 다음 13시 50분 용산 발 새마을호를 혼자서 타고 18시 01분에 구례구역에 '착'했습니다. 

아침 점심 밥때를 놓쳐 도시락 판매원이 지나가기만을 고대하다 내 배만한 도시락 하나를 말끔히 게눈 감추듯 비우고 살짝 잠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몇 년 전보다 상황이 좋아진 겁니다. 
2001년 부산영화제에 (영화인으로서) 참석하기 위해 새마을호를 탔을 때는 식당칸에서 '일꺼리'를 펼쳐놓고 왼손으로 밥을 퍼넣으며 커피 마시랴 물 마시랴, 오른손으론 일하랴 유난법석을 떨었거든요. 그렇게 부잡한 모습만 보이지 않았어도 어쩌면 영화 <비포 선라이즈> 비스무레한 영화 한편 찍었을지도 모르는데... 

선발대원 四人과 함께 화엄사를 못 가본 것이 못내 아쉬워 구례구 역 간판을 배경으로 셀카를 들이대며 화엄사에서 득도하고 내려올 四人을 기다렸습니다. 

18시 15분 즈음, 9인승 밴이 깃발(차창 밖으로 흔드는 손들)을 꽂고서 '역전'에 서 있는 '역전의 용사'에게 달려들었습니다. 
벌써 지리산 자락의 노고단에서 동동주 한잔씩으로 발그족족하게 목 축이시고 장아찌 등의 토산품을 사가지고 온 四人과 밴에 동승하자마자, 후발대가 이번 여행을 포기했다는 비보를 접했습니다. 하늘이 노랗더이다! 순간 가을인가 싶을 정도로 가로수들이 샛노랗게 보이며 정신이 혼미해지더니, <삼국지>에서 주유가 조조를 상대로 회유책을 펼치던 대목이 떠오르며 나의 정신은 인사불성 직전의 상태에 돌입하는 것이었습니다. 

"정아, 너 모하니? 얼렁 버스 시간 알아보고 낼 첫차로 내려오도록 해!(앞뒤 생략)" 

자칭타칭 '한미모 여사'로 불리는 한정아 여인네는 마음은 있어도 누군가 손을 잡아 끌어주어야 하는 에이~형 성격임을 이용, 저는 주저없이 회유책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단 한 마디라도 '빼는' 발언을 하면 휴대폰 폴더를 덮으리라..내심 벼르며^^ 

그녀는 혼자서 오는 것이 두려웠던 겁니다, 자신조차 감당할 수 없는 미모를 5시간가량의 여정에 방치한다는 사실은 누가 생각해도 위험천만한 일일 테지요. 그녀는 평소 존경해 마지않는 선배 언니(역시 내심 스케줄 비워두신)를 모시고 다음날 아침에 출발하겠다는 호외를 통신상으로 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선암사 초입에 여장을 풀고, 폭포 같은 개울물 위로 설치된 야외 평상을 독차지하고서 五人은 감칠맛 나는 라도식 '스끼다시'와 닭백숙(나중에 되돌이켜 생각해보니 엄나무백숙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과 닭도리탕(요리책에선 '닭매운볶음' 요리 등으로 개명되어 가는 추세이지만, 영 딴 음식 같고 제맛이 안 날 정도로 굳어진 명칭)을 배경으로 맥주->잎새주->맥주, 잎새주 혼합 폭탄주->참이슬주 순으로 점차 계곡물이 되고 초록 나뭇잎이 되고 시골모기가 되고, 바람이 되어갔습니다..다음날 01시 무렵까지! 
(상도 아낙네 최귀열 여사는 88학번이 되었다가 81학번이 되었다가 79학번이 되었다가 74학번 과정까지 밟았습니다..실로 대단한 '말술'의 위력에 나머지 일행은 손사래를 쳐가며 혀를 내두르는 것도 모자라 거의 신음에 가까운 비명을, 모기소리만 한 단말마를 내뱉기까지!! 그 순간부터 저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22시 00분 즈음에 소화불량을 동반한 오심-메스꺼움-을 호소하며 일찍이 침소에 든 원경 처자를 따라 이불 속으로 다이빙하지 않은 것을 통탄해 마지 않았지요) 

이어지는 노래방행에 동참할 것이란 헛된 맹세를 헌신짝처럼 벗어던지고 원경 처자의 젖살 냄새 가득할 208호를 향하여 뒤도 안 돌아보고 내달렸습니다. 

이어 따라 들어온 인영 회장님의 호령, "원경, 잠깐 일어나. 노래방 갔다가 들어오게." 
공포에 찬 원경 처자와 엄살 가득한 눈망울로 선처를 호소하는 저의 비굴한 표정에 기다렸다는 듯, 마지못해 굴복하는 듯 인영 보살님도 제가 잠깐 씻고 나온 사이 범접할 수 없는 꿈의 세계로 입성해 있더군요. 

01시 50분 즈음, 귀열 언니와 순희 언니(연장자임에도 막내 같은 아이러니의 소유자!)가 들이닥쳐 三人의 배신녀들을 향해 잠시 행패성 소동을 부리는가 싶더니 그자세 그대로 그자리에 스러져 망부석이 되었겠지요(저는 등돌리고 자는 척하느라 차마 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불과 3~4시간 후 05시 00분에 막내 같은 정력의 소유자 순희 언니의 알람이 울렸고, 나머지 四人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을 체감하며 선암사를 향해 올랐습니다. 
산비를 부러 맞으며, 간혹 나무등걸에 기대어 쉬며, 깔깔호호거리며... 

왕복 2시간여를 오르내리니 간밤의 숙취도 웬만큼 씻겨 내려간 듯, 五人은 '라이크 어 버진' 새날을 맞았습니다. 

아침식사부터 한상 떡하니 차려 먹고 선암사와 조계산의 정기를 뒤로하고 녹동으로 향하였습니다. 비내리는 녹동항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서(여기서 맛본 멸치젓갈과 게장은 참말로 '듁음'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의미로..), 럭셔뤼 썬비치 호텔 206호 온돌방에서 후발대를 기다리며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이, 녹동 해변가와 어시장도 둘러보았지요. 
비는 오지만 준비해 간 썬글라수스를 써먹어야 했기에 우산 쓴 검은 왕눈이들이 녹동항 방파제를 오갔다는 어느 외로운 강태공의 파발마를 혹시 전해 듣지 못하셨습니까? 

한미모 여사를 후발대장으로 '위장'한 한주 언니 이하 二人이 도착한 때는 15시 무렵입니다. 
쫄 민소매를 입었음에도 배 부분이 헐렁한 한미모는 정말 이상한 여인넵니다. 그 맛있는 먹을것들을 그녀는 왜 배불리 먹지 않을 수 있는 걸까요? 갈수록 복부와 대퇴부의 살만이 나의 재산인 양 간직하고 살아가는 저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있다는 진리를 그녀가 항상 나에게 일깨워주는 건 사실입니다..히~ 

'오늘(6월 30일)' 안에 소록도를 다녀와야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았습니다. 
철선을 타고 갔지요. 내려선 두 다리로 왕복 45분쯤 걸리는 소록도 내 해수욕장에 갔다 왔고요. 마지막 배를 놓치면 안 되겠기에 흰사슴떼가 노닌다는 소록도 중앙공원이며 대나무숲은 아쉽게도 가보지 못하였습니다. 

녹동항변의 광주횟집에서 저녁겸 술자리가 펼쳐졌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성게알과 개불, 돌성게, 문어, 해삼, 멍게, 패주 등으로 입가심을 하고 농어회에 매운탕에 한상 걸판지게 먹었습니다. 

22시 00분부터 저를 포함한 三人이 옆자리로 옮겨가 슬쩍 '삼순이'를 시청하고 있는데 2차로 라이브 카페로 간다며 자리를 떴습니다. 저와 원경 처자는 삼순이를 그 즉시 버렸지만 한주 언니는 챌로 라이브 카페에 가서도 삼순이를 끝까지 보았다는... 

우리 회원들, 카수 정말 많습니다. 춤꾼도 많고요. 
그지역선 한 딱깔이 하는 사람들만 들어와 차지하는 스테이지를 서울-경기 지역 주민들이 통째로 차지하고선 장시간 리사이틀을 펼쳤으니, 홈그라운드 주민들의 눈도 간만에 호사를 누리지 않았을까 싶네요..으흐흐흐흐흐~ 

발바닥 때가 덜 벗겨졌다며 3차를 선동(?)한 막내 같은 왕언니가 아니었더라면 저는 노래 한번 못 불러보고 눈물의 상경을 해야 했겠지요. 발바닥 때를 벗기러 간다기에 저는 발마사지 받으러 가는 줄 알았더니, 파라다이스 나이트 노래 주점이었습니다. 실내에서 풍기는 향기는 참말로 파라다이스허게 퀴퀴했고, 조명은 징허게 나이트했지만 실로 발바닥 때가 벗겨지다 못해 지문이 닳도록 라이브한 여흥의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쌓인 트랜스지방을 연소시키기 위하여 부르스곡을 부르면서도 팔짝팔짝 땀나도록 맨손체조를 하기까지 했습니다. 

심하게 땀을 흘리고 나니 잠님이 몰려들어 썬비치 호텔 206호가 집인 양 그리워졌습니다. 
03시쯤 208호에 들어올 수 있었지만, 심냐토론과 샤워를 끝내고 나니 04시...08시 무렵에 전원 기상! 

어느새 간사한 혀에 익숙해진 라도식 밥상을 또 다시 게눈 감추듯 훑고 나니 전날 후발대를 위하여 급히 끼워 넣은 송광사행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지요. 

순천 가는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을 달려 터미나르에 도착, 첫날 밴을 태워준 인영 회장님 고향 친구 분이 또 다시 흑기사처럼 나타나셔서 송광사까지 데려다주셨지요. 

송광사 초입에 다다르자 또 밥때가 되어 동동주에 파전, 산채정식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운 다음 걸었습니다. 

훌륭한 승려들을 많이 배출했다 하여 승보사찰(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봉안한 통도사는 법보사찰, 팔만대장경으로 유명한 해인사는 법보사찰이라 하여 이 삼사를 '삼보사찰'이라 하지요)로 알려진 송광사 경내를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찻집에 잠시 유하여 세작 차를 우려 마시며 그림 같은 雨中山 풍경을 눈에 넣었답니다. 

18시 광주 발 용산행 KTX를 타기 위해 역으로 가는 동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노곤한 여정의 때를 마지막으로 벗기기 위한 사투 끝에 달콤한 잠의 끝을 붙잡고 앞뒤로 연신 끄떡거리기 시작하였지만, 조수석에 앉은 우리의 한미모는 운전자에 대한 예의와 본인의 불타는 학구열을 어쩌지 못해 줄곧 토론의 장을 펼쳤습니다. 
그녀의 바로 뒤 목받이 간이 좌석에 앉은 저는 목이 서너 번쯤 뒤로 꺾이는 중생의 고통을 느끼면서도 잠 속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었지요. 

광주역 매표소를 빠져나와 잠이 덜 깬 채로 6호차로 급히 향하다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웬 남정네의 우직한 어깨에 왼쪽 턱을 부딪혀 오른쪽 귀청까지 울리는 통증을 맛보고서야 드디어 서울로 가야 한다는 자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타본 케이티엑스는 시속 300km 내외로 달려도 승차감이 매우 좋았고(저는 아홉 살 때 처음 타본 청룡열차 같은 줄 알고 약간 두려움에 떨었거든요), 무궁화호처럼 우리끼리 마음껏 수다를 떨 수 없는 분위기가 흠이라면 흠이었지요. 

그러나 우리의 용감한 '칠선녀'는 할 말 다하지 않았겠어요?! 

할 일이 기다리고 있어 급한 마음에 가락국수 먹고 헤어지자는 제의도 마다하고 집으로 달려왔지만, 할 일은 무슨...짐을 방구석에 던져놓은 채 곧 잠들어버리고 말았답니다^^ 

그러고 보니 6월~7월에 걸쳐 두 달 동안이나 여행한 셈이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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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희(35) 2005-07-03
아참, 사진은 선암사의 새벽 풍경입니다. 좀 더 많은 사진을 올리고 싶은데 기술이 부족해서요. 공부 좀 해야겠어요^^;;
궁금하신 분은 www.proedit21.com의 '갤러리'를 방문해주세요~
이진희(35) 2005-07-04
통도사는 불보사찰입니다^^;;